【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⑥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왜 신앙의 언어는 그 힘을 잃었는가?
저자 마커스 J. 보그
출판 비아
발매 2017.04.20.
08.예수의 죽음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는 것은 예수의 죽음이다. 그리스도교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여타 종교에서 중심 인물의 죽음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교는 없다.
그만큼 설교와 모임과 기도에서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이 사건에 대한 이해는 과연 얼마나 깊이 있는지 모르겠다. 예수의 죽음은 어떤 것이며, 그는 왜 죽었고, 그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저자는 이렇게 알려준다.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중 가장 널리 퍼진 이해는 속죄로서의 죽음, 즉 예수가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죗값을 치렀다는 것이다. 이를 신학용어로 ‘대속’ 또는 ‘속죄’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예수는 우리가 받아 마땅한 형벌을 대신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다.
이러한 이해를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이해라 여긴다. 하지만 전통적인 것도 아니고, 성서에 나오지도 않으며, 그리스도교 역사가 1천 년이 흐를때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와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가장 상식적이고 타당해 보이지만, 깊이 살펴보면 그리스도교인들이 종종 간과하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첫째, 그 죽음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지우고 무모하게 만든다. 예수는 그냥 죽지 않고 살해당했다. 그것도 범죄자나 암살자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공권력-제국 권력과 거기에 부역하는 종교 권력의 결탁-에 의해 처형되었다. 당시 저항하는 노예나 지도자, 폭력이든 비폭력이든 제국의 권위에 조직적으로 도정한 죄수를 응징하기 위해 로마가 사용한 십자가형을 당했다.
둘째, 대속은 하나님의 성품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속은 하나님을 우리를 벌하는 존재로 그린다. 하나님은 법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를 처벌해야 하는데, 우리를 처벌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버금가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기꺼이 자신의 독생자를 내주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포장하든 우리를 벌하는 하나님이라는 성품은 남아 있다. 이 하나님은 누구든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며 우리의 피든 예수의 피든 보기를 원한다.
셋째,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왜곡한다. 예수의 죽음을 대속의 틀로 이해하는 방식은 예수를 믿고 용서받아 천국에 가는 게 그리스도교의 전부인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보통은 예수가 우리를 대신한 ‘희생양’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려 죽음을 당했다고 배우고 알게된다. 그러나 이런 관념은 성서의 희생과 목적과 의미를 심각하게 왜곡하는데, 성서에서 말하는 희생은 결코 무언가를 ‘대체’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의미에서 ‘희생’은 무엇을 하나님에게 바침으로써 그것을 성스럽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희생양은 일종의 상징으로 자신들의 죄를 염소에게 씌우고 그 염소를 광야로 몰아냈다. 염소는 ‘죄를 짊어진 존재’였다. 하지만 그 염소를 죽이지 않았고 제물로 바치지도 않았다. 죄를 짊어진 염소를 하나님에게 선물이랍시고 바쳤다면 신성 모독의 혐의를 받았을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마틴 루터 킹, 오스카 로메로는 누군가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하나님의 요구로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갈망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예수도 하나님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갈망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죽게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했고 삶을 하나님에게 선물로 바쳤으며, 죽기까지 변함없이 그 길을 따른 것이다.
09.부활
그리스도교에서 얘기하는 가장 놀라운 사건은 예수의 부활이며, 부활을 믿음으로써 기독교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절은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축일(절기)이다.
대다수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부활절에 하나님이 예수의 시신을 기적적으로 변화시켜 무덤이 텅 비게 한 ‘물리적’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서 무오설과 문자주의 신앙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신앙을 따르며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리스도교인도 죽으면 예수와 같이 변화된 모습으로 부활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영원히 사는 생명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활이 본질적으로 빈 무덤-예수의 시신에 발생한 무언가 비상한 일에 관한 것일까? 예수의 유골이 발견된다면 그리스도교는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부활한 예수를 만난 기록을 보면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시신이 변화한 것 그 이상이다.
이제 부활이 단순히 문자적인 시신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려준다. 신약성서 전반에 걸쳐 말하는 예수의 부활은 크게 두 가지 의미 갖는다고 알려준다.
부활의 첫번째 의미는 “예수는 살아 있다”는 것, 예수가 단순히 과거 인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해서 체험되는, 영속적인 실재라는 점이다.
부활의 두번째 의미는 예수가 영속하는 존재로써 체험될 뿐만 아니라 ‘주님’이자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인 신성한 실재로 체험된다는 점이다. 부활은 예수에게나 우리에게나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보다 더 큰 무엇을 뜻한다. 부활은 우리에게 누가 우리의 주님인지를 묻는다.
예수는 제국의 권력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인 줄 알았던 권력자들의 생각과 다르게 예수는 부활하여 살아있는 존재로 제자들에게 신성한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살아있는 예수를 증거하면서 더 넓은 지역으로 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였다. 권력자들은 죽었지만 예수는 오히려 살아났다.
부활은 내가 죽어서 예수처럼 다시 살아나는 말초적인 소망이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예수를 체험하고 예수가 가르친대로 새로운 세상,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을 품고 끝까지 따르게 하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