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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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좀 특이하다. 흔히 기독교서점에서 보는 책들은 주로 어린이를 위해 성경을 이야기식으로 풀어 놓은 것이지만, 이 책은 성인의 수준에 맞게 역사서의 구성 형태를 갖고 만들어졌다. 기독교인들이라면 거의 다 아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원인들도 같이 풀어내는 식이다.
거기에 더해서 글로만 풀어내기 보다는 성경 속 역사적 사건을 그림으로 그려낸 명화를 곁들여 지루하지 않고 좀 더 상상력을 자극하게 한다. 또한 중간중간 그때 당시의 시대와 주변 국가들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저자의 독특한 해석을 곁들이고 있다.
성경을 기독교 경전이 아닌 역사서의 입장에서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적 상식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물론 성경에는 역사적 사실외에 종교적 성격의 구절이 많이 있고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요 근간을 이룬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이 책은 종교적인 측면보다는 유대인이라는 민족 중심의 역사적인 사실을 주로 다루어 시대순으로 정리하면서 이야기로 엮어내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경외의 다른 서적들도 많이 참고한 듯 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실인 것'들과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은 매우 다르다. 모든 나라의 모든 역사서에는 그 국가의 국민들이 과거에 일어난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국가의 역사서를 보면 거기에는 아주 다른 설명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나라의 역사서만 읽은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그것만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고 성토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완전 엉터리이고 아전인수격이며 자기들의 잘못을 미화하는 역사를 배운 아이들은, 자라나 성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 배운 왜곡된 역사를 진실이라 믿고 그에 반하는 말은 듣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왜곡된 역사가 진실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채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다. 정말 일본 아이들이 이렇게 될까봐, 그래서 다시 전쟁광의 모습을 갖게 될까봐 두렵기까지 하다.
<여러 세기 동안 구약은 고대 아시아의 유일한 역사서였다 그러나 약 1세기 전에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독되었고, 그 후 바빌론의 신비로운 필기법을 해독하는 단서가 발견되었다. 이제 우리는 고대의 유대 역사가들이 기록한 이야기에 매우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대 역사가들은 자기 민족 중심의 역사가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똑같이 저질렀고, 자기 종족의 영광을 위해서 진실을 왜곡하기도 했다.>는 말도 새겨둘만하다.
책의 처음은 당연 천지창조로 시작한다. 따라서 관련한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그림들도 소개해준다.
그 후에 몇대를 지나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서 방랑의 생활을 하던 때가 되면, 유대인들은 시시때때로 힘들고 불편한 유목민 생활을 때려치우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인간의 천성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3,000년 전 의 유대인 역시 다를바 없었다. 이집트에서 끔찍한 노예 생활로 몹시 불행했던 유대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도 역시 불평했다.> 한 번 몸에 배어버린 습관은 쉽사리 벗어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어떤 늙은이들은 일제시대를 그리워하고 그 때가 더 좋았던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가보다.
세월이 지나 사사 시대가 되었어도 유대인들(아니 인간들의 본성일 수도 있지만)의 조변석개하는 모습은 바뀌질 않는다. 유대인들은 고난과 평화의 시간을 계속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같다.
이런 모습을 보고 저자는 말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휴식의 시간은 사람들의 전반적인 사기에 악영향을 주는 것 같다. 모세는 항상 경계하며 여호와를 섬기라고 명령했으나, 살기 편해서 즐겁게 돈 쓰는 것 외에는 다른 문제가 없을 때 정신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시스라가 패전한 직후, 사막의 위대한 하나님은 완전히 망각되었고 젊은 세대들은 그의 계율을 무시했다. 젊은이들은 내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시며 하루하루를 즐겼다.>라고 탄식한다.
우리는 거의 성경으로만 구약시대의 상황을 접했기 때문에 유대인의 존재가 당시 다른 부족이나 민족들에게도 매우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저자는 밝혀준다.
<느부갓네살 시대의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유대인이라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과거 미국인들이 푸에블 인디언을 생각하던 정도인지 모르겠다. 원주민들이 미국 남서쪽 어딘가에서 반 독립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은 막연하게나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위치도 정확하지 않고 신경쓰는 이도 없다...(중략)... 같은 시대에 살았던 칼데아인들은 유대인들을 현대의 러시아나 아르메니아의 처량한 난민 정도로 생각했다.>
우리가 구약을 통해 얻은 유대인들 중심의 정보와 지식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인식이라는걸 알 수 있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유대인 자신들 조차도 난민 수준으로 지내는 자신들의 신(神) 즉,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보다는 '훨씬 더 잘지내고 번성하는 이방인들의 신을 섬기는게 낫겠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금의 우리가 가진 신앙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아주 낮은 신앙이지만 당시에는 그랬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성경의 저자들은 말하려는 진정한 의미를 일부러 숨기고 상징적 표현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대표적으로 요나서의 동화같은 이야기인데 <"바빌로니아 대제국이 유다라는 작은 왕국을 정복했고 반 세기 후 포로들을 풀어주어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을 때, 그들은 "고래가 난파선의 선원을 삼켰다가 며칠 후 땅에 토했다"고 적었던 것이다. 물론 2만 5,000년 전 사람들 중에는 이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비빌론을 단지 돌과 폐허로 알고 있는 현대인들은 결코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예를들어 말해준다.
단순히 성경에서 말하는 당시 역사, 유대인들의 역사를 아는 것을 넘어 시대 상황까지 생각하면서 좀 더 폭넓은 시야를 갖고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여기에 곁들여진 명화는 마치 맛있는 음식에 얹어놓아 조화롭게 어울리며 식욕을 돋우는 데코레이션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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