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왜 신앙의 언어는 그 힘을 잃었는가?
저자 마커스 J. 보그
출판 비아
발매 2017.04.20.
03.구원
기독교인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가장 비중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구원이다. 구원을 받음으로 죄 사함을 얻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게 기본 인식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에서 말하는 구원은 그저 한 사람에게 평안과 소망을 주고 삶의 목적을 갖게하는 정도의 단순한 말이 아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구원은 ‘열반’이나 ‘깨달음’ 만큼의 비중있고 광대한 의미로 꽉 찬 단어이며 핵심 용어다.
기독교를 전파할 때 기본으로 하는 말은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가세요.’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게 입 밖으로 말하진 않더라도 반대 급부로 얻게 될 형벌이라는 배경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공포심과 불안을 유발하는 위협적인 방식은 교인들의 행실을 통제하고 조작하기 위한 가학적 수단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구원에 대해 이런 방식의 이해는 배타성을 만들어 냈으며 구원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날카롭게 구분했다.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과 달리 교인들은 구원 받은 자로 여기며 우쭐해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졌다. “구원과 자부심은 함께 한다”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서에 구원 관련 단어는 5백회 등장하는데 2/3이 구약성서에 나온다. 그런데 성서에서 구원은 내세와 거의 관련이 없다. 성서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현재 통용되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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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으로서 구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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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는 ‘귀양살이에서의 귀환’으로서 구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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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위협에서 구출됨’으로서 구원을 말한다.
구원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한 면에서 구원은 개인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원은 일관되게 집단적이다.
성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정의는 경제 정의다. 성서가 열망하는 경제 정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란 땅과 식량과 같은 삶의 물적 기반이다. 사람은 기본적인 것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 이는 소수의 자선이 아닌, 함께 만든 체제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서는 부와 권력을 가진 지배 계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방향으로 세계 질서를 구축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구원되어야 한다.
현세에서 구원 받았고 내세에 천국에 갈 것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게 아니다. 저자는 구원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세상 모두가 변화하는, 이중적인 변환이라 강조한다.
나의 삶이 바뀌고 속박에서 해방되며 건강해지고 상처를 치유받는 것이 자신의 변화로서의 구원이다. 또한 우리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 자손들 그리고 미래에 세상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변화가 구원인 것이다.
04. 성서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성서는 총 66권이며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카톨릭이나 동방 정교회, 성공회 등 대다수 교파는 이 외에도 외경(마카베오, 지혜서, 집회서, 유딧, 바룩서 등)을 성서로 인정한다. 이렇게 교파에 따라 다르다면 과연 누가 맞는 것인가? 성서가 하나님 영감으로 쓰여졌다면 다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바울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향해 편지를 썼을 때, 편지를 받은 이들은 물론이고 바울 자신도 그 편지를 ‘성스러운 경전’으로 여기지 않았다. 어떤 책을 성서에 포함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은 수 세기에 걸쳐 진행되었다.
성서가 그 기원 때문에 성스러운 경전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선조들이 그 문서들을 신성하다고, 권위 있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성스러운 경전이라는 점이다. 성서가 특별히 하나님에게 직접 영감을 받은 기록이어서가 아니다.
이 부분은 약간 논란이 될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성서를 대하는 마음과 자세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해준다. 종이에 인쇄되어 엮여진 책인데 그 안에 적힌 하나 하나의 문자와 글이 신성해서 성서로 여기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인이 된다는 것은 성서를 권위있는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스도교의 기반이 되는 책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 성서와의 대화를 멈춘다면 이는 곧 그리스도교인이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성서는 그리스도교인의 삶과 정체성을 구성한다.
성서를 ‘하나님에 관한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르는 이유는 성서가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자 매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면에서 성서는 신성하다. 기원이 신성하거나, 권위가 신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인의 삶에서 성서가 갖는 목적과 기능이 신성하기에 성서는 신성하다.
성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수단이다. 성서는 그리스도를 담고 있는 구유다.
성서를 읽으면서 한 단어와 문장과 구절에 집착하지 말고 전체의 문맥과 역사적 상황을 떠올리며 그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고 묵상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 이해된다. 기계적으로 읽어 나가는 통독이나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맹목적인 순종은 변화된 구원을 바라는 신앙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침이라 여겨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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